나는 온종일 컴퓨터 쓰는 게 일인 사람이다. 그렇다고 복잡하고, 무거운 프로그램을 쓰는 건 아니다. 인터넷 서핑하고, 문서 작업하고, 여가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게 다다. 그렇게 아무런 문제 없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컴퓨터를 3년쯤 썼다. 사무용 저가 컴퓨터였지만, 쓰는 데 불편은 없었다.
다만, 반년쯤 전부터 CPU 과열로 인한 꺼짐 현상이 발생하곤 했다(강한 추정). 여러 해결 방법을 조언받은 끝에 결국 빅타워로 케이스를 교체했다. 케이스 교체는 효과 만점이었다. 케이스를 교체한 직후엔 한두 번 더 컴퓨터가 과열로 꺼졌지만, 보름쯤 지나고 나자 그 뒤로는 지금까지 약 반년 넘게 단 한 번도 다시 다운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컴퓨터를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해오고 있.었.다.
인터넷뱅킹 프로그램을 다운받기 전.까.지.는.
몇 주 전 컴퓨터에 세금 처리와 이체를 위해 홈텍스와 KB국민은행이 설치를 ‘강제’한 온갖 프로그램들을 세트로 다운받았다. 효과는 확실했다. 이삼일쯤 지나자 “메모리가 부족합니다”는 팝업이 떴다. 그전까지는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메시지다.
더불어 웹 사이트의 이미지 파일 로딩 속도가 느려졌다. 업무상 자주 찾는 픽사베이나 플리커 와 같은 이미지 공유 사이트의 썸네일 사진 이미지들이 모니터에 현출되는 속도는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려졌다. 거기에 이미지 있는 인터넷 게시판 게시물을 조회하는 동안에는 이미지 파일이 아예 뜨지 않는 ‘엑박’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컴퓨터를 잘 아는 지인(블로거 ‘옥토’)에게 물었다:
“(앞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 제 컴퓨터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우연인가요? 아니면 인터넷뱅킹 프로그램 설치와 관련이 있나요?”
“그건 필연이죠.”
우리는 일제로부터 광복했고, 박근혜 일당으로부터도 대한민국을 구해냈지만, 여전히 PC 인터넷뱅킹 프로그램의 포로다. ‘육두문자’가 절로 나오게 하는 그 인터넷뱅킹 프로그램에 내 PC는 노예처럼 사로잡혀 있다. 다시 조언을 구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메모리를 좀 늘리면 될까요?”
“가상머신을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이 문제로 사원들 컴퓨터들이 너무 느려져서, 가상머신을 PC에 설치해서 썼어요. 그런데 그것도 귀찮아져서, 아예 사무실 차원에서 인터넷뱅킹을 전담하는 컴퓨터를 따로 마련해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과 ‘핀테크’가 단 하루도 언론 기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2018년 현재 버전이다. 정말 매일같이 ‘컴퓨터 잘하는 누군가’에게 나 같은 ‘컴알못’들은 한숨을 쉬며 조언을 구한다. 이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 거지발싸개 같은 인터넷뱅킹 프로그램들을 증오한다. 이것은 마치 철천지 원수에게서나 느낄 법한 그런 종류의 증오다. 그런 짜증스러움이고, 울화통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짜증이 밀려온다.
각설하고, 컴퓨터를 잘 아는 또 다른 지인(슬로우뉴스 편집위원 ‘노모뎀’)에게 물었다. 같은 질문. ‘인터넷뱅킹 프로그램에 포위된 내 컴퓨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구라 제거기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름 때문에 신뢰가 가지 않았는데, 살펴보니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더군요. 인터넷뱅킹 프로그램들을 삭제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인터넷뱅킹 프로그램의 포로가 된 내 PC를 구출하기 위해 나는 세 가지를 실행하기로 했다.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나는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불쌍하다. 인터넷 강국의 인터넷뱅킹이 이렇게 ‘개판’일 수는 없다. 아니 개판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꾸준하게 ‘개판’인채로 10년 넘게 유지될 수는 없다. 이건 정말 정상이 아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그 후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게 하는 기득권 세력의 카르텔이 있다. 기술적인 후진성과 제도적인 후진성을 묵인하는 그들만의 담합이 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억측’이 아니라 누구나 떠올릴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추론’이다. 김기창 교수는 이를 ‘공인인증서 커넥션’이라고 명징하게 표현하고, 비판한 바 있다. 그게 무려 2013년의 일이다.
그래서 촛불혁명에서 우리가 외쳤던 ‘이게 나라입니까’의 분노와 거의 동급의 분노로 우리는 인터넷뱅킹 프로그램에 여전히 사로잡힌 PC를 바라보며, ‘이게 PC입니까’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PC’을 위해서라도 이 거지발싸개 같은 인터넷뱅킹 프로그램들로부터 우리의 컴퓨터는 해방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해방은 내 컴퓨터 하나 ‘구출’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는 진심으로 이 글을 쓰면서도 버벅거리는 컴퓨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인터넷뱅킹 프로그램으로부터 해방되는 그 날을 꿈꾼다.
누가 만들었을까? 구라 제거기를 만든 제작자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억압당하고, 수탈당하는 평범한 백성이라면, ‘구라 제거기’를 만든 이는 만주에서 말 달리는 광복군쯤 되지 않을까, 그런 엉뚱한 상상이 스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미 잘 아는 분. 오랫동안 교류해왔던 블로거 벗 ‘블루앤라이브(BLUEnLIVE)’가 구라 제거기의 제작자였다. 바로 전화기를 들었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하 블루앤라이브와의 인터뷰.
= 프로그램 이름이 ‘구라 제거기’다. 이름이 좀 장난같기도 한데.
이름에는 큰 뜻을 두지 않았다.
= 여기서 ‘구라’의 뜻은 뭔가.
‘보안’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컴퓨터에 유해한 ‘구라’이기 때문.
= 구라 제작기, 왜 만들었나.
인터넷뱅킹 프로그램 때문에 컴퓨터가 느려졌다는 사람들이 자주 조언을 구한다. 나는 이것저것만 프로그램을 지우라고 조언한다. 인터넷뱅킹 프로그램 중에서 특히 키보드보안 프로그램을 삭제하면 상당히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일일이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좀 힘들고, 귀찮은 면도 있어서 아예 잘 알려진 인터넷뱅킹 프로그램들을 한 번에 지우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프로그램 간단히 설명하면.
프로그램 추가/제거 목록에서 ‘유해한’ 인터넷뱅킹 프로그램을 찾아서 ‘한방에’ 지워주는 프로그램이다.
= 어떤 분들이 이용하면 좋을까.
윈도우에서 뱅킹하는 모든 분들.
= 왜 이런 후진(적인) 기술이 사라지지 않을까.
12년쯤 전에 인터넷뱅킹이 해킹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최초의 인터넷뱅킹 해킹 사건은 시스템 자체를 해킹한 게 아니라 사용자의 키보드 정보를 모니터링하는 방법을 이용했다(참조: 인터넷뱅킹 첫 해킹… 시스템 개선 필요, 한겨레, 2005. 6. 3.)
이 사건은 소송까지 이어졌는데, 법원은 은행에 재발 방지를 위한 기술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고, 은행이 이에 관한 기술적인 솔루션을 제공해야 했다. 당시 키보드해킹을 막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액티브엑스 밖에 없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다.
현재의 ‘.exe’ 파일은 액티브엑스를 실행파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 인터넷뱅킹 보안 프로그램이 컴퓨터에 미치는 영향은.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을 한 개만 설치해도 컴퓨터는 느려지는데, 2개 이상 설치되면, 컴퓨터를 더 느려지게 한다.
= 국민이 가장 불편을 느끼는 ‘인터넷뱅킹’은 인터넷의 대표적인 적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일차적으로 정부가 민간에 액티브엑스를 강제하지 않는 것까지는 했다. 그 다음 수순은 솔직히 모르겠다.
= 김기창 교수는 슬로우뉴스 기고를 통해서 액티브엑스를 둘러싼 “공인인증서 커넥션”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는데.
김기창 교수의 그 생각에 동의한다.
=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서 보람을 느꼈을 때는?
사용한 분들이 “잘 썼습니다”라고 짧게라도 댓글을 남길 때. 그리고 후원해주셨을 때(웃음).
= 반대로 황당한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얼마 전에는 구라 제거기에 비트코인 채굴기가 숨겨져 있다는 헛소문이 돌았었다.(어땠나?) 어이가 없었다. 그 중에는 직접 제작자가 해명하라는 요청도 있었는데, 지금은 저절로 그런 헛소문이 사라진 상태다. 헛소문은 사라졌지만, 씁쓸했다.
= 우리나라 프리웨어 개발의 현주소는 어떤가.
모른다.
= 그러면 프리웨어 개발자들 모임이나 그런 행사나 없나.
워낙에 다들 자유로운 영혼들이라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 같다. 아직 내 주변에선 못봤다. (웃음)
= 끝으로.
관심이 고맙고, 반갑다. (끝)